깔깔거리며 보는 내내 (사실 웃은 대부분의 이유는 쿈 역의 스기타 때문이었지만) 생각한것은,
아아. 이것은 정말로, 나와 당신이 살아오면서 한번쯤은 생각해봤을.
우리 모두가 한번쯤 꿈꿔보았지만 살아오면서 이미 잊어버리고 있었던, 바로 그런 판타지다.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워낙에 유명한 작품이라 -하지만 알아볼 생각을 한 적이 한번도 없다-. 이 작품이 대체 왜 이렇게 붐을 일으키고 다녔는지 사실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이미 은혼 을 보고 난 뒤라서일까). 그러고보면 정말이지 제목도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이라니. 불친절해!! 대체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어...?
그리고 애니를 보는 도중에 생각한것은, '이것은 학원물의 탈을 쓴 SF 다!!'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SF적 요소는 이 작품의 양념 같은 요소여서, 결국엔 학원물로 귀결된다는 게 있긴 했지만.
애니가 아무래도 약 1쿨 분량만 있어서 그런건지 어쩐건지. 아무래도 원작으로 읽으면 좀 더 친절하고 짜임새 있는 구성일 것 같긴 하지만. 좀 정신없었던 애니의 구성도 나름 논리적이고 괜찮았다. 예전에 하루히 관련 글을 스쳐지나가면서 원작의 구성을 마구 뒤섞어놓은 애니의 구성에 관해서 적어놓은것이 있었는데 물론 그 당시에 하루히에 관심이 전혀 없어서 거의 읽지않고 스킵했지만. 보고있노라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 원작을 읽은 사람들은 좀 황당했을수도 있겠다,
하지만 원작을 읽지 않은 나같은 경우엔 오히려 그렇게 불편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뭐 질러놓고 나중에 수습하는 그런건 거의 모든 애니에서 벌어지는 일이잖아, 다만 하루히 의 경우엔 원작도 있으면서 이런 전복이 그게 '전면' 에 드러나 있다는 것 정도일까. 그리고 오히려 초반에 질러둔 것들이 이야기의 텐션을 떨어뜨리지 않고 끌어가는데에 꽤 중요한 역할을 했다(뒤에서도 언급하겠지만, 솔직히 좀 빤히 보이기도 했지만). 분명 어떻게 보면 전후설명없이 이츠키가 이건뭐임 하고 튀어나오는 등 좀 어색한 면은 있지만, 나중에 보면서 이해하는것으로, 그리고 오히려 다음에 설명해주겠지 라는 기대를 하게 만들었달까.
그리고 '스즈미야하루히' 니 만큼 이 애니의 특성이겠지, 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는 것으로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따지자면, 이 '하루히' 의 존재라는것 부터가 하여간에 기존 상식을 깨부수는 캐릭터 아니던가.
하루히 를 이해하는 당신이라면, 이 애니의 구성도 이해할 수 있는거니까.

(뜬금없이 또 삼천포로 잠깐) 엔딩을 보면서 정말로 많이 웃었는데, 제일 왼쪽을 보면 퉁명스러운 얼굴로 모든 동작을 절도있게 소화하는 쿈이 있는것이다 :) 그럼 그렇지. 하루히가 나섰는데 어찌 SOS단이 가만있으랴. 아마 하루히가 음악도 안무도 배치도 다 짜와서는 SOS단 특훈!! 후 이런 절도있는 딱딱맞는 안무가 가능하게 된 것이 아닐까? 저 퉁명스런 얼굴이 어찌나 귀엽던지 :D
하루히의 존재 자체가 상식을 깨부수는 측면이 있는 반면에, 하루히 라는 인간 자체는 의외로 논리적이고 꼼꼼하게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하루히 를 둘러싼 어이없는 일들도 의외로 꼼꼼하게 구성되어있다. 어릴때, 혹은 '난 누구지' 정도의 철학적인 생각을 할 학창시절 즈음에 한번쯤. 다들 해본 생각 아닐까? 세계는 어쩌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있다는 둥, 혹은 이 세계가 모두가 나의 꿈이 아닐까 혹은 누군가의 꿈에 등장하고 있는 등장인물이 아닐까. 혹은 정말 절대 신 과 같은것이 있어서 그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그저 장난감이라던가.
나 라는 존재가, 나 라는 존재에게 가장 중요한 나 라는 존재가 사실 따지고보면 너무나 평범하고, 좀 더 생각하면 절대적인 누군가에게는 신경 쓸 가치조차 없는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어린시절 최초로 자기 자신을 타인과, 그리고 지구 상의 자신이 인식할 수 없는 것들까지의 모든것과 동일선상에 놓아보는. 나 자신 을 향한 절대적인 믿음이 뿌리부터 무너지는 경험.
그리고 하루히 라는 존재는 사실 최근까지도 우리 주위에서 흔히(까지는 아니지만) 얘기되는 사람들의 한 유형 같아 보이기도 했다. 자기 자신의 염원을 실현시키는 사람. 대체로 그 사람들이 그런 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노력' 때문이었다는것이 하루히와 다르기는 하지만, 뭐 어쨌든. 간절히, 순수히 진심으로 원하여 무언가를 실현시키는 힘. 그것은 사실 지금도 나는 믿는다, 인간의 염원이라는것이 결코 작지 않은 힘을 가지고 있다는것을. 그것이 무언가 이해할 수 없는 '에너지' 스런 형태로 나타나기 보다는 그 염원이 해당 인간을 그렇게 이끈다는것에 나는 집중하지만, 뭐 어쨌든 :)
그리고 쿈!!!!!! 꺄아 쿈!!!!!! 쿄오오오오오오오온!!!!!!!!!!!! (맥락과는 상관없이 갑자기 불타오르는;;;)
스기타가 쿈 으로 유명해졌다는 이야기를 엄청 들었는데, 쿈 이 뭐야. 쿈이... 스러운 그런 마음뿐이었는데 사실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을 처음에 포기하지 않고 본 이유는 설정이 뒤통수를 치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보다도 바로바로바로 쿈!! 이었다!! 심지어 은혼 에서보다 더 많은 대사를, 스기타 본연의 목소리로, 그리고 정말 옆에 있을것만같은 '보통 소년' 의 목소리로!!!!!!!!!!!!!!!!!!!!!!!!!!!! 연기하는것이라니. 애니 1화는 하루히 일당의 어이없는 영화인데, 그것을 본 이유는 단지 츳코미를 넣으며 간간히 웃음을 참지 못해하는 스기타의 목소리가 좋았기 때문이다 ㅠㅡㅠ 언젠가 절망방송에서 카밍이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을 언급하며 스기타의 배역은 스기타 말곤 아무도 못할거다 라고 언급한게 생각나는데 정말 그 말이 딱이었다. 스기타 말고 누가 쿈 을 이렇게 살려낼 수 있었을까???? 문득문득 긴토키가 느껴지긴했지만 그건 아마 스기타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톤 일 것이고.

그리고 쿈 과 함께 정말로 좋아진 캐릭터가 나카토 유키. 정말 좋았다. 유키는 왜 좋았던건지 잘 모르겠는데 하여간 정말로 너무너무 좋았다. 유키가 등장하는 장면에서(유난히) SF적 설정이 강조되었다는것도 어쩌면 한 몫 할지도. 그리고 유키가 그런상황에서 등장할때의 배경음악도 엄청나게 취향이었고. 상당히 빠르고, 나직한 톤으로 무미건조한 언어로 믿을수 없는 말을 내뱉는 유키는 비밀을 숨기고 있는 캐릭터이면서도 정말로 너무 사랑스러워서. 특히 안경을 쓴 유키♡ 정말 좋았다. 특히 교실 안에서 쿈 을 지켜주는 유키는 정말로!! 최고!!!! 하루히보다 더 좋았어 (...) 목소리가 ㅋㅋㅋㅋ 우와. 유키. 진짜 사랑스러웠다. 유키 정말 무언가 할 말이 많지는 않은데 정말 사랑스러웠어. 쿈 다음으로!!

너는 나의 백업 역할일 터, 독단 전행은 허가되지 않았어. 내 뜻에 따라야만 해.
정보결합해제를 신청한다.
유키의 대사가 대체로, 저런식으로 짤막짤막 끊어지는것은 아마도 유키가 사실은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유키는 처음, 쿈에게 언어로는 다 전달할 수 없는 것이지만- 이라고 하며 자신과 하루히의 존재를 설명했었지. 유키의 대사가 저런 식으로 되어있는것은 어쩌면 유키가 인간의 언어 라는 것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저부분, 유키 역을 맡으신 성우분(누구신지...)이 대사하실때 리듬이 참 좋았다.
하루히 가 원작과 다르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보고있는 내가 이해하면서도 오히려 그것때문에 혼란스러웠던것은 애니의 결말 부분 때문이었다. 실질적으로 결말은 이미 이전에 나 있는 상태에서, 애니 식으로 결말을 이끈게 그 선택이었던것 같은데 솔직히 원작을 읽으면 왠지 원작의 손을 들어줄 것 같은 부분이 이부분이다. 애니의, 단순한 에피소드 가 아니라 '결말' 이 그런 전형적인 학원물 식으로 나버렸기때문에 사실은. 이 애니의 전반적인 감상 자체가 독특하게 잘 포장된 학원물 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하루히 가 이정도로 인기를 얻은데에는 아마 좀 더 독특한 느낌이 한 몫 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좀 슬펐다.



그러나 (...)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이거나 말거나 쿈은 -> 무슨 꿈을 꿔버린거야!! 프로이트 선생님이 폭소를 하겠다!!!!!
사실 ㅠㅡㅠ 사실 ㅠㅡㅠ 이 결말을 보면서는 쿈 을 뺏긴것같은 마음에 ㅠㅡㅠ 슬펐어... 흑흑흑흑 ;ㅁ; 그리고 애니의 연결연결을 계속 보면서 스스로도 이렇게 흘러가는게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예상되고- 있었다는게(앞에서부터 계속적으로 복선이 깔리니까, 그리고 원작 순으로 다시한번 생각해보면 그것은 그것 대로의 '에피소드'로 남겨놓고 또다시 SOS 단의 활약이 계속되는 분위기 같았어서, 그리고 그게 더 나아보여서) 속상했다아아아아아아앙- 물론 이 부분이 정말 '너무나 결말스러운' 내용이긴 하지만.
너무 빤히 보이긴 하지만!!
확실히 이 황당무계한 작품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하루히 캐릭터가 큰 몫을 하고있는것 같다. 작품 안에서 가장 황당무계한 캐릭터가 하루히 같으면서도 하루히 의 그 개성 때문에 작품의 모든 에피소드는 진전될 수 있고, 위에도 적었듯이 하루히는 의외로 황당무계하지 않다. 하루히가 하는 고민은(우울해질때의)정말로 이 몰개성적인 사회에서 개인들이 하는 고민이 아닌가. 사실은 나는 정말로 티끌같은 존재이며, 즐거운일은 내가 기다리고만 있는다고 해서 찾아오지 않는것이고. 생활에 무언가 항상의 이벤트가 있었으면 하는 바램은 사실 모두가 하고있는것이니까. 그리고 그것을 실천에 옮길 수 없는 우리들과는 다르게 하루히는 당당하게,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오히려 '앞으로의 즐거운일을 위한 가능성' 으로 생각하며 즐겁게 해낸다. 그리고 우리의 일반인 쿈 은, 본인이 사실은 하루히 일당들과 돌아다니는 이 일을 싫어하기는 커녕 일정부분 즐기고 있지만 '하루히 이자식이 또 일을 벌였으니까..' 라며 츤데레모드로 참여한다. 사실 우리가 가장 바라는건 쿈 의 포지션일것이다. 누군가 그렇게 이끌어줬으면 좋겠어, 그렇다면 그 누군가가 이미 하고있으니까, 라며 나도 따라할 수 있잖아.
스즈미야 하루히를 통한 대리만족. 그것은 정말로 유쾌한 일이었던것같다. 의외로 굉장히 일반인인 하루히와 세계를 조종할 수 있는 하루히가 마음속에서 줄다리기 하고 있는것은 어쩌면 우리의 이야기가 아닐까. 나도 당신도, 어쩌면 우리는 자각하지 못했을 뿐이지 우리는 이미 우리에게 맞게 상황을 변화시키고 있는것인지도 모른다. 당신이 이 자리에 앉아있는것은 당신이 선택한것이고, 지금 당신이 살아가는 시간도 당신이 선택한 것. 그 무엇이 어쨌거나 당신이 선택했다는것은 변하지않는다.
그러면 하루히를 보면서 우리는 생각해야 할 것이 하나 남게된다.
지금 이 선택의 순간에서, 정말로 당신이 선택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선택이 어렵다면, 지금 스즈미야 하루히 를 보라.

태그 : 스즈미야하루히의우울, 스기타토모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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